[한경에세이] 광화문 연가(戀歌)

입력 2024-03-06 18:18   수정 2024-03-07 00:18

내 일터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 이면도로에 있다. 여의도에서 이곳으로 직장이 바뀐 지 3년째 접어들었다. 네모반듯한 수십 층 빌딩에 에워싸이고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바삐 오고 가는 그곳에서는 몰랐다. 사무실 위치와 주변 풍광에 대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지주에서 카드사로 업무 영역이 바뀌면서 광화문으로 건너오게 된 것은 개인적 ‘행운’이었다. 교통편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냥 정서와 분위기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것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 골목의 풍경과 간판, 길가에 풍기는 음식 냄새, 심지어는 공기의 질량마저 다르게 느껴졌다. 직위가 주는 책임감과 업무 강도는 더 커졌음에도 공간과 시야가 확 바뀌니 마음에 여유가 조금씩 생겨났다.

사무실 창밖을 보면 북악산이다. 신록에서 단풍으로 백설로 옷을 갈아입는 계절의 순환을 보면서 사색에 빠진다. 널따란 경복궁을 보면서 치욕과 영광의 역사를 떠올린다. 걷기가 한결 편해진 광화문광장 벤치에 앉아 평화롭게 책을 읽는 시민들, 물놀이하는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도 본다. 정치·사회적 이슈가 터지거나 중요한 축구 경기라도 있는 날에는 민심을 읽고 함성을 듣는다. 시간 내기가 쉽진 않지만 지척인 덕수궁,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물 흐르는 청계천은 어지러운 마음을 정돈해준다. 계절마다 제각각의 정취로 아름다운 돌담길과 정동길로 발길을 옮기면, 세월이 흘러도 남아 있는 그 어떤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잠긴다.

광화문은 조선왕조 이래 대한민국의 중심이자 상징이지만 의외로 번잡스럽지 않아 좋다. 최근에는 백성과 소통하는 임금의 길, 월대(月臺)도 복원돼 시야가 한층 훤해졌다. 역사와 문화와 서사와 시민의 호흡이 살아 있는 이곳을 오가며 집만이 아니라 일터의 위치도 삶에 중요한 것임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집을 사거나 이사할 때 주변 환경을 꼼꼼히 살펴본다. 그런데 취업이나 이직을 할 때는 연봉부터 먼저 따진다.

한 번쯤은 내가 일할 곳 주변을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놓친 그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지금 직장 근처에도 나만의 보물이 될 그 무엇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슬기로운 직장생활이 사무실 안에만 있을까. 종일 빌딩 사이를 오가는 사람과 산과 하늘과 공원과 광장과 미술관을 보며 다니는 사람은 오감(五感)이 다르지 않을까. 직원들에게 하루 30분씩 회사 주변 산책을 의무적으로 하게 한다는 최고경영자(CEO)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창의적 발상이나 미래에 대한 통찰은 우람한 빌딩숲보다 저 작은 공원 구석진 언 땅에서 지금 움트고 있는 새싹에 숨어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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